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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문홍의 연극 이야기>연극을 통한 소통과 치유-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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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통한 소통과 치유

                                                         -제14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연극평론가 김 문 홍


     2014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전국 40여 개의 연극축제 가운데에서 레퍼토리의 다양성과 실험정신, 기획과 운영의 내실화, 연극인을 위한 소통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축제 기간이 예년보다 늘어났으며, 우수한 국내 초청작으로 그 진용이 화려하고, 집중화된 공연장의 배치로 연극인들의 소통이 원활하고, 관객들의 관극 태도와 자세가 연극적 품위를 지켰다는 측면에서 올해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섹션이 미래 한국연극을 이끌어갈 젊은 연극인들을 지원하고 키워가는 경연 형식의 ‘젊은 연출가전’과 ‘대학극 전’이다.  

     올해 축제에는 개막작과 폐막작에 2편, 셰익스피어극 주간에 7편, 국내 초청공연에 4편, 기획공연에 7편, 가족극 주간에 6편, 젊은 연출가전에 9편, 대학극 전에 5편, 그리고 야외극 무료공연에 5편 등 총 45편의 공연이 7월 26일부터 8월 10일까지 16일 동안 이루어졌다.



    다양한 변주를 통한 형식과 내용의 새로움 : 초청작과 기획 공연  

      성벽극장에서 이루어진 개막 초청작인 극단 미추의 뮤지컬 모노드라마인「벽속의 여자」(배삼식 극본, 손진책 연출)는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작품은 스페인 소설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프랑코 독제 체제 아래에서 사상범으로 몰려 벽속에서 숨어 지내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한국적인 상황으로 전환하여, 일제 말부터 한국전쟁, 자유당 정권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지식인 아버지가 사상범의 굴레에 옥죄어 벽속에 숨어 지내게 되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있다.

     모노드라마의 연기자인 김성녀는 역시 대단한 배우이다. 흔히 모노드라마는 ‘배우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김성녀는 두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연극적 에너지와 순발력으로, 속말로 관객들을 쥐었다 폈다 하는 유연성과 능청함으로 일관해 연기의 중후함을 보여 주었다. 혼자서 수십 명의 역할을 소화하는데 각각의 인물을 차별화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거뜬하게 해치우고 있다.

     각 인물에 맞는 대사의 음색, 그 인물에 적확한 표정과 마임, 그리고 액션까지를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고 있다. 한 역할에서 다른 역할로 변신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특유의 순발력으로 한 치의 공백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연극에는 12개의 노래가 나오는데, 이 노래는 한 씨퀀스의 매듭을 짓거나, 혹은 상황의 변화를 표현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연극의 템포와 리듬을 조성하는데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극적 상황이 긴장에서 이완, 그리고 이완에서 긴장으로 전환될 때 그 사이에 노래를 삽입하여 관객과 역할 인물인 배우의 심리적 이완을 잘 조절하고 있다. 김성녀는 역할 전환의 이음새를 인물의 감정과 심리상태에 적합한 대사의 음색으로 구사하여 천의무봉한 연기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후면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그림자 인형극 ‘열두 달 이야기’의 동화적인 환상, 그리고 연기자가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투사되는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하늘과 구름의 영상. 단아한 피아노 음악, 그리고 깔끔하고 단아하며 균형감을 보여주는 박동우의 무대 미술은 모노드라마가 갖는 평면적 분위기를 입체감 있게 구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하모니의 기능을 담당하기에 손색이 없다. 공연이 끝나고 천여 명의 관객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통해 배우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극단 하땅세의 국내 초연 작품인「파우스트」(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작, 윤시중 연출, 숲의 극장, 7. 26〜27)는 쾨테의 동명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여 창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물을 비롯한 물체의 이미지를 사용한 일종의 오브제 극이다. 무대 위에 특수하게 제작하여 장치된 직사각형의 공간에는 시종일관 물이 흘러들어 파우스트의 암울한 내면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파우스트를 유혹하여 심리적 상황을 엿보는 메피스토 역시 여자 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물의 이미지는 ‘정화(淨化)’의 의미로 작용하고 있는데, 파우스트의 심리적 풍경의 혼란성과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라는 이중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배우들은 시종일관 물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으며, 배우들의 육체와 부딪치는 물의 마찰에 의한 시청각적 이미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물은 이러한 심리적 이미지와 형식의 실험적 의미로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너무 과다하게 사용되어 처음 가지고 있던 관객들의 극적 호기심이 희석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더불어 너무 형식적 실험으로서의 오브제에 치중하다 보니 파우스트의 내면적 심리 추이과정이 묵직하게 다가오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연출의 실험적 표현의 과잉으로 인물의 내면이 가려져 버린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장면과 장면의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고려되지 않아 극적 템포가 평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연출가 윤시중의 무대적 이미지의 혁신을 위한 형식 실험은 현실에 안주하는 여타 젊은 연출가들에게 끊임없는 혁신과 모험을 위한 하나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파우스트의 심리적 여정 중 트로이 전쟁 상황을 압축하고 물의 이미지에 의한 오브제의 형식 실험의 절제, 그리고 파우스트의 내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수정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연극의 혁신적 시도에 큰 기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나고야시의 아동극단 우링코의「잠든 마을」(한트 후그른드 극본, 연출, 2014. 7. 29〜30, 우리동네 극장)은 독창적인 무대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말로 된 대사를 절제하는 대신 역할 인물들의 다양한 행위와 마임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극중 인물의 가면을 쓰고 역할을 수행하는가 하면 어느 때는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음향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전반부는 여섯 명의 배우들이 잠든 마을 사람들의 꿈속을 연기하고, 중반 이후부터는 날이 밝고 나서의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 풍경을 연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꿈속의 그들은 저마다 노인의 외로움, 자기 과시, 먹고 사는 일의 피곤함, 게임 중독 등의 현대인들의 속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상황에 대한 본질적 속성을 보여주고, 다시 날이 밝으면 그들의 평온한 일상 속의 행복한 인간관계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성인 관객에게는 내면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하여 성찰의 시간을 부여하고, 어린이 관객에게는 성인 세계의 다양한 풍경을 통해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작품은 어린이 관객에게 도덕적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마을의 일상적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화된 아동극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행복한 풍경을 통해 우리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 사회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백민역사연극원과 우리극연구소의「물고기의 귀향」(이윤택 극본, 남미정 연출, 숲의 극장, 2014. 8. 1〜2)은 원제가 ‘구룡포에 살았다’로, 1900년부터 구룡포에 살았던 일본인 어부를 소재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일본 가가와현 어부들이 조선해협을 건너와 구룡포에 정착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앞부분은 그들이 구룡포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서사극적 기법으로, 그 이후부터는 일본인 후손인 시게노리와 구룡포의 조선인 처녀 순나가 결혼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반목과 갈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고 있다.

     이 작품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시게노리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무런 경계가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물고기의 속성처럼,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적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곳이 곧 존재의 근원이라는 확고한 사상으로 민족주의의 편견에 저항한다. 노년의 두 남녀가 회한의 감정으로 서로 포옹하는 마지막 장면은 한일 두 나라의 민족주의에 대한 인본주의적 은유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무대 위에 둥그런 원형 두 개를 겹쳐 놓은 대도구는 여러 공간을 설정하고 있다. 장면 전환마다 그러한 대도구의 이동을 통해 참치잡이 어선, 시게노리의 집, 학교 등을 표현하고 있다. 무대 후면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자막과 영상 또한 사건 전개

    와 표현 불가능한 상상적인 공간,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는데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프로젝트 고백의「고백」(김광림 작, 최준호 연출, 가마골소극장, 2014. 8. 3〜4)은 정통적 드라마라기보다는 일종의 대사가 있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이 작품은 인간의 태어남에서부터 성장, 그리고 노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부정적 사고와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남녀가 무대에 등장하여 끊임없는 요설적인 대사로 인간 존재를 혐오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고백을 늘어놓는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자아성찰을 고백이라는 형태로 시도하고 있지만 관객에게는 불편하다.

     이 작품에는 무대 후면에 주제를 상징하고 극적 상황을 은유하는 영상이 투사되고 있으며, 무대 우측에서는 라이브로 음악과 소리가 생성되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시청각적 요소의 과잉으로 인해 무대 위 배우의 연기는 거기에 함몰되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두 남녀 배우 역시 연극적 호흡에 의한 정서와 감정의 표출을 고려하지 않는 요설적 대사를 그저 내던지고 있을 뿐이다. 상황과 상황, 장면과 장면의 탄력적인 리듬의 부재, 그리고 동어 반복적인 대사의 과잉으로

    이 연극은 5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이지만 아주 지루하게 느껴지고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대중극「아리랑」(원작 김윤미, 이윤택 재구성 연출, 성벽극장, 2014. 8. 3〜8. 4)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연극계를 중심으로 연극인들의 고통과 고뇌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의 연극사를 복원시켜 한국 근대연극사의 한 부분으로 정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작품은 연극의 쾌락적 기능과 교시적 기능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대중에서부터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감동과 각성을 일깨우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 작품 속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연극인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연극 작업을 통해 신파극, 대중가극, 신연극의 미학적 견해와 사상에서부터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연극적 방법론이 소개되고 있다. 원형 무대를 통한 장면의 효율적 전환과 시대적 고증에 따른 여러 가지 의상, 그리고 작품의 주제와 인물의 감정을 형상화하고 시대사회적인 대중의 정서를 표현한 노래들의 삽입, 감정이입과 관객을 의식한 서사극적 기법이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연극적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는 점은 돋보인다. 연극적 이념과 노선에 의해 갈라져 분단이라는 이별의 아픔을 겪는 마지막 장면은 예술가적 고뇌와 선택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의 울림을 주고 있다.

     

    재해석에 의한 한국적 수용 : 셰익스피어극 주간

    극단 골목길의「로미오와 줄리엣」(셰익스피어 원작, 박근형 재구성 연출, 숲의 극장, 2014. 8. 3〜4)은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는 원작을 90분으로 압축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장치가 없이, 그래서 오직 배우들의 연극적 에너지만으로 무대 위에 긴장감을 주고, 매번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는 ‘박근형 표’ 연극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새로운 시각에 의한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두 가문의 반목과 갈등을 남북으로 대치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으로 환치하고 있다는 점이 그 첫째이다. 그래서 무대 후면의 중앙에 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걸개그림에는 임진강을 사이에 둔 남북의 산하가 그려져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가문의 화해 대신 우리 현실의 현 상황처럼 반목과 갈등의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는 점이 그 둘째이다.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인물들의 대사 역시 행위가 수반되는 동적인 언어로 바뀌어져 시종일관 긴장감에 의한 극적인 전개로 일관한다. 젊은 배우들의 다이내믹한 대사와 행위는 장면마다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게 하여 이 극을 극적인 속도감으로 이끄는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공연은 관객들에게 연극적 재미와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각성의 기회를 함께 부여하여, ‘지금 이곳’의 동시대적 연극이 관객을 연극의 자장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소재와 주제, 그리고 연극적 방법론으로 노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극단 여행자의「로미오 & 줄리엣」(셰익스피어 원작, 양정웅 재구성 연출, 우리동네 극장, 2014. 8. 5〜6)은 원작의 두 남녀의 성 역할을 바꾸고 있다. 몬테규가의 로미오는 적극적인 여자로, 그리고 캐플릿가의 줄리엣은 섬약하고 섬세한 남자로 역할이 뒤바뀌고 있다. 즉, 21세기 형 남녀 성역할의 모델을 투사해서 점점 변화하는 동시대적 남녀의 성격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성 역할의 전환에 따른 현대적 문명의 풍속도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무대 후면의 배경막에 시종일관 투사되는 ‘팝 아트’의 속성을 드러내는 그래픽 영상, 그리고 인물의 표정과 행위를 비롯하여 실내의 가구와 집기들을 무대의 역할 인물들이 소형 카메라로 촬영하여 배경막에 영상으로 표현하는 기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남성들은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소극적이고, 여성들은 오히려 남성적인 과감성으로 전도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은 표현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또한 연출의 표현 기법이나 양식에 있어서 다소 서구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이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지만, 무의식의 밑바닥에 아직도 유교적인 도덕률이 깔려 있는

    한국인의 시점에서 볼 때는 어딘가 모르게 낯설고 부담감을 느낄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지금 이곳’의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독창성은 긍정적이지만 그것의 주체적인 보편성이 아쉽다.

     연희단거리패의「피의 결혼」(가르시아 로르카 작, 이윤택 연출, 성벽극장, 2014. 8. 5〜6)은 남미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축제인 ‘콜롬비아 이베로 아메리카노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관객의 기립 박수를 받은 작품으로, 원작의 배경인 스페인의 문화와 한국적 전통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외래문화가 우리의 전통과 어떻게 만나고, 또 그것이 어떻게 한국적으로 수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한국의 전통 춤, 서구적인 연기 양식과 한국적 몸짓, 스페인의 춤과 노래에 덧입혀진 한국적 소리와 전통장단이 충돌하면서 보다 새로운 표현을 창출되고 있다. 그것을 상징하듯 무대 전면에 배치되어 라이브로 연주하는 국악 퓨전 그룹인 ‘반’의 악기 편성 역시 기타, 아코디언의 서양악기와 가야금, 해금, 피리, 생황과 같은 전통악기로 구성되어 라이브 연주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결혼식을 끝내고 옛 애인과 도망가는 신부의 도발적인 행위를 통해 여성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도덕률의 충돌로 인한 비극적 상황을 시적인 리듬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신랑의 어머니가 절규하며 다시 돌아온 신부를 맞는 마지막 장면처럼, 그러한 비극 속에서도 여성들은 대지를 지키며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론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김미숙의 절제된 슬픔의 연기와 억압된 정한이 서린 소리, 이승헌과 윤정섭의 내공이 뿜어내는 역동적인 힘과 순발력, 그리고 무표정하면서도 욕망과 도덕률의 혼재된 감정을 표현한 김하영의 존재가 돋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상황과 인물의 감정을 다양한 마임과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형상화한 무리들의 혼신의 연기가 돋보였다. 특히 국악그룹인 ‘반’의 연주와 소리, 그리고 노래는 일품이었다.

     공연제작센터의「황금용」(롤란트 시멜페니히 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 숲의 극장, 2014. 8. 7〜8)은 2013년 한국연극 대상 수상, 연극평론가가 뽑은 ‘베스트 3’에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몇 가지 측면에서 독특하다. 주요 역할 인물들(5명)이 자신과 타 역할인물의 행위에 대한 지문 낭독, 황금용 식당의 주방에 근무하는 5명의 불법체류자 요리사들이 메인 플롯의 사건을 진행하면서 그 사이 사이에 삽입되는 서브 플롯의 다른 에피소드까지 연기하는 다양한 변신,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처럼 빠른 템포의 장면 전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소외된 사람들의 외로움과 삶의 절박함에 대한 시적 은유이다. 늙음을 감내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노인의 외로운 일상, 아내의 외도로 사랑에 관한 상실의 아픔을 겪는 남자,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젊은 연인들, 장거리 비행에 지친 스튜어디스들, 그리고 불법체류자의 신분 때문에 치통을 앓다 죽음에 이르는 중국인 소년의 아픈 속내가 이 연극의 일상적 풍경이다. 이 연극에서 허공을 날아다니는 이빨과 ‘개미와 베짱이’의 변용된 우화는 주제에 대한 상징적인 은유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죽어 영혼이 되어 바다를 건너 귀향하는 중국 소년의 이야기는 가난과 소외에 대한 슬픈 비유이면서 날선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빨을 우연하게 습득한 스튜어디스가 이빨을 입속에 넣고 음미하는 장면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인본주의적 연민을 상징한다. 커다란 비닐 천의 흔들림으로 중국인 소년의 귀향길을 묘사한 기법은 아주 독창적이다. 여기서의 요동치는 바다의 파도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는 난폭한 현실을, 그리고 그 속을 표류하며 힘겹게 유영하는 소년의 영혼은 근원에 대한 모성적 회귀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배우들의 천의무봉한 연기적 변신과 현실에 대한 냉철하고도 객관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몇몇 아쉬움이 보인다. 실내가 아닌 야외극장의 열린 구조때문에 작품의 밀도가 떨어져 역할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과 마임이 주는 아픈 속내가 초점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 소년의 이빨에 대한 은유적 상징이 관객에게 충분하게 그 의미가 수용되지 못해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는 점, 그리고 극의 초반부가 정제되지 못하고 다소 산만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형식과 내용의 독창성, 배우들의 템포감 있는 연기적 변신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우리극연구소의「길 잃어 헤매던 어느 저녁에 맥베스」(백하룡 작, 연출, 우리동네 극장, 2014. 8. 7〜8)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압축하여 ‘지금 이곳’의 시대사회적 상황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희곡은 시적이고 은유적인 대사로 사회현실을 압축하고 있지만, 그러한 시적인 환상을 형상화하는 무대미학이 정제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어딘가 모르게 윤기가 없이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고 있다.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평면적인 대사, 장면 연결의 필연적 인과성 결여, 그리고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광기와 죽음이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흠이다.

     우리극연구소의「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모리츠 링케 작, 이채경 연출, 가마골소극장, 2014. 8. 7〜8)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한 장면을 차용하여, 가장 진정성 있는 소통과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할을 맡은 배우가 연습 시간에 맞춰 오지 않자 조연출 펠릭스는 술을 마시고 분노하다 잠이 든다. 이 연극의 주요 서사는 펠릭스의 꿈과 환상 속에서 완성된다.

     갑자기 연습장에 2000년 전의 로마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알몸의 헬륨 브레히트가 나타난다. 뒤늦게 줄리엣 역의 안나가 나타나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극장 바깥은 세상의 종말로 무너지고 있는데, 극장 안에서는 진정한 소통으로서의 인간관계와 사랑이 완성된다. 사랑의 힘과 진정한 소통으로 인한 인간관계만이 모든 절망과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작의 분량을 절반 가까이나 줄인 탓으로 서사의 이해에 무리가 따르고,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그런 이유로 헬륨 브레히트의 출현에 대한 의아심을 지울 수가 없다.  

            

     형식적 실험과 도발적 주제의식의 약화 : 젊은 연출가전             

      카자흐스탄극단 ‘다’ 씨어터의「예스맨 노우 맨」(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나타샤 더브스 연출, 스튜디오 극장, 7. 26〜27)은 주제와 형식적인 면에서 정통 서사극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현실적 위기 상황에서의 도덕적 선택과 결정을 요구하는 드라마 텍스트를 제시하고, 후반부에서는 교실 장면을 통해 개인적 졀정으로서의 윤리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병에 걸린 어머니를 구할 약을 얻기 위해 교사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전반부는 서사극의 소외효과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관객들의 감정적 동일시를 차단하기 위한 상황 밖의 객관적 연기와 코러스 기법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서 코러스는 화자, 인물의 내면적 상황, 그리고 무대 위의 오브제 역할까지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는 등 플롯 구조의 평면성에 입체감을 부여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혼신의 에너지를 보일 만큼 역동적이다. 후반부에서도 학생들 각자의 도덕적 선택의 상황만 보여줄 뿐 최종적인 결론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다. 관객들은 이러한 상황 제시와 결정의 과정을 통해 윤리적 태도를 내면화하고, 극장 밖에서도 그러한 극적 메시지가 행동으로 실천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의 각자의 의자 위에 헝겊으로 만든 인형 오브제를 설치하고 퇴장하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에 러시아에 가주하고 있던 독일인들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시킨 스탈린의 전제적 폭정에 의해 예속화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신들의 윗세대에 대한 레퀴엠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극단 격정 프로젝트의「경련」( Y. 사다코 작, 이혁재 연출, 상동, 7. 26〜27)은 영상 이미지와 물체 오브제를 결합시킨 일종의 융복합 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이다. 심리 상담 연구원들의 역할극 형식을 통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외상을 다루고 있는 부조리극이다. 그런데 각자 환자들이 앓고 있는 정신적 질환들이 대인관계의 어려움, 먹고 사는 문제, 소통 부재 등 이미 익히 알려진 것들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관객과의 소통 부재라는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해 아쉽다. 아무리 부조리극이라고 하지만 주제나 형식적인 표현들이 추상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영상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게 암시되는 내용을 극적인 표현들이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극을 더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극단 예술다리 전설의 삼선교가 공연한「꽃담」(공동창작, 안치선 각색, 연출, 2014. 7. 28〜29, 스튜디오 극장)은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 4일 전부터 당일까지 궁궐 안팎의 경계인 꽃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안쪽의 연이는 궁녀이고 바깥쪽의 천삼은 시체를 처리하는 염쟁이다.

     이 작품은 기아에 허덕이는 민초들의 고난과 역경, 가족의 안위와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씨줄과 날줄로 구성되어 있지만, 플롯 구성이 평면적이고 장면 사이의 긴장과 이완으로 형성되는 템포와 리듬을 고려하지 않아 극적 긴장감이 없다. 그리고 장면의 압축과 절제가 없고 인물의 심리적 추이에 의한 행위의 당위성이 부족하여 깊은 울림도 주지 못하고 있다. 좋은 소재이지만 그것을 갈무리하는 입체적 극적 구성력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 흠으로 작용하고 있다.   

     극단 다의「2014년 여름」(하세가와 코지 작, 임세륜 연출, 스튜디오 극장, 2014. 7. 30〜31)은 원작을 한국적인 상황으로 번안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유소에서 일하는 두 젊은이를 통해 출구 없는 한국사회 청춘들의 고민과 갈등, 고통과 절망, 그리고 전망 없는 부박한 일상을 저항적 태도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두 젊은이의 내적인 갈등과 방황이 시대 사회적인 현실과 연결되지 못하고, 한 개인의 자학적 고백으로 일관하고 있어 그들의 저항적 행위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 속의 계절인 여름의 무더위가 그들을 속박하는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관객에게는 구체적인 상황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드라마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점, 그리고 외부에서 틈입한 두 젊은 남녀의 행위가 필연적 당위성으로 주제 구현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데에도 모호하게 처리된 점은 가장 큰 흠이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일하는 두 젊은이의 역동적인 연기력은 높이 살만하다. 특히 극중 인물 민철 역할을 특유의 에너지로 소화한 배우의 격정적인 연기는 높이 살만하다.

     극단 창세의「개천의 용간지」(한현주 작, 백석현 연출, 스튜디오 극장, 2014. 8. 1〜2)는 남녀 공학 고등학교의 영화 동아리 학생들의 청소년 영화제 출품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소재로, 학생들이 부모 세대의 정리해고를 통해 현실을 인식해 가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결함은 화술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대사 전달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대사는 언어의 고저, 장단, 강약, 완급을 통한 연극적 언어가 되지 못하고 그저 내뱉는 일상어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무대 위의 역할 인물들은 현실의 한계상황에 대한 고민과 갈등으로 아주 심각한데, 관객들은 그러한 그들의 내면적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극단 고도의「나에게 머무르다」(김소정 작, 연출, 스튜디오 극장, 2014. 8. 3〜4)는 드라마와 신체극이 결합된 ‘드라마틱 신체극’이다. 어릴 적 가족 동반자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소년 류의 트라우마를 대사를 극도로 절제한 신체극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류의 성장 드라마는 서아의 소설 속의 판타지로 액자소설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관객과의 소통에서 실패하고 있는 마지막 반전은 아쉽다.

     이 작품 속에는 배우들의 신체를 비롯하여 인형, 새, 빗소리, 물의 이미지 같은 시청각적 오브제가 동원되기도 하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현대무용과 아크로바틱, 부토, 패스트 슬로우 모션 등의 여러 가지 요소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체극적 요소들이 관객에게 충분하게 전달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의「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 갱생 프로젝트」(황이선 작, 연출, 스튜디오 극장, 2014. 8. 5〜6)는 한 젊은 회사원의 직장 내에서의 고군분투기를 요즘 젊은 관객들의 감성과 재미에 맞추어 만든 작품이다. 오래 동안 사귀어 왔던 연인에게서 이별통보를 받은 내면적 상실의 아픔과, 전투에 가까운 직장 생활에서의 분투를 날줄과 씨줄로 하여 희화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것이 서사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기까지가 전부이다. 형식은 새롭고 감각적이고 창의성이 돋보이는데, 그 내용이 구태의연하고 날선 현실인식이 없어 아쉽다. 책상과 의자의 기능적인 구도와 배치를 통해 극적 상황과 공간을 변별하고 있는 점, 그리고 두 명의 분신을 통해 내면적인 상황과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 점은 새롭다. 그러나 플롯의 서사는 새로울 것도 없이 이미 있음직한 상황의 나열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이 개인적인 고백에 그칠 뿐이지 그것이 사회의식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극단 해적단체의「형민이 주영이」(황선택 작, 연출, 스튜디오 극장, 2014. 8. 7〜8)는 이번 참가 작품 중에서 가장 ‘젊은 연출가전’의 콘셉트에 근접한 작품으로, 그 도발적인 주제의식과 전복적인 플롯, 내공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역동적인 연기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성찰을 요구하는 날선 목소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삶의 비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진정한 인간의 연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표현 방법과 메시지가 아주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섬뜩함을 지니고 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소외되고 궁핍한 공간을 상징하는 허접쓰레기로 가득찬 공간 속에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버지의 아픈 속내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무대는 시종일관 불편함의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늘 밖으로만 떠드는 길 위의 남편 형민, 전쟁의 상흔과 현실적 궁핍을 과거의 낭만적 추억으로 치유하려는 아버지, 그리고 외로움에 찌들어 남자이면서 같은 남자를 남편으로 받들고 사는 아내 주영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적인 상처를 남기면서도 서로의 체온으로 현실의 궁핍과 외로움을 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이 작품은 사실주의에 충실하면서도 과장적인 행위와 비상식적인 인간관계의 상황 설정,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결합이라는 비사실적 요소가 끼어들어 인간의 외로움과 궁핍한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후반부에 동어반복적인 상황들이 자주 제시되어 극의 템포를 약화시키고 있는 점과 역할인물들의 저항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는 단서가 부적한 것이 아쉽다. 압축과 절제를 통한 드라마투르기에 좀 더 충실하다면 좋은 작품으로 거듭날 것 같다.

     극단 수수파보리의「처용, 오딧세이」(정안나 작, 연출, 스튜디오 극장, 2014. 8. 9〜10)는 늘 밖을 떠드는 남자와 인내하며 그들을 기다리는 여성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무대 우측의 거대한 풍선, 그리고 무대 후면에 투사되는 바다의 이미지는 시각적 은유로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여성 배우들의 중후한 연기와 앙상블이 안정감이 있고, 이 모든 것을 정제하여 형상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에 방점을 명확하게 찍어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은 하나의 흠이다.  


    날선 현실인식의 부재 : 대학극 전  

    대학극 경연작인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의「억울한 여자」(쓰시다 히데오 작, 임유진 연출, 가마골소극장, 2014. 7. 28〜29)는 한 개인에 대한 지방 도시 사람들의 집단 따돌림을 통해 현대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인간관계의 부조화와 부조리를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연구소에 의한 생태 환경의 파괴를 ‘썰매미’의 존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유코의 행위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대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역할 인물들의 미묘한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연기 경험이 일천한 대학생들로서는 역부족이다.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와 다양한 표정과 마임, 그리고 변화하는 행위를 시도하지 못하고 드라마의 줄거리만을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카페라는 무대 공간에 너무 많은 탁자와 의자들이 배치되어 역할 인물들의 연기 공간이 부족하여 획일적인 행위만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청운대학교 방송연기학과의「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최인훈 작, 유현준 연출, 2014. 7. 30〜31, 가마골소극장)는 원작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어,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시적인 분위기로의 토속적 정서가 없이 그저 줄거리 전달에만 그치고 있어, 대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벅찬 느낌을 주고 있어 아쉽다. 그리고 절제되고 단아한 한국적 한의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작품에서 시적인 서정성의 분위기를 반감시키는 장면들을 남발하고 있는 장면들은 많다. 관가에서 용마를 잡지 못한 분풀이로 마을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에서 후면에 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계엄군의 폭압적인 폭력 행위의 사진을 투사하고 있는 점, 무대 좌측에서 시종일관 내리고 있는 눈과 아내가 죽은 장면에서 내리는 붉은 꽃비, 첫 장면의 전투를 상징하는 두 배우의 에크로바틱 등은 오히려 관객의 극적 상상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의「눈 오는 밤」(변영진 작, 연출, 가마골소극장, 2014. 8. 1〜2)은 철거대상 지역에 사는 마을 사람들의 인정가화를 감성에 호소하고 있는 리얼리즘 극이다. 마을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을 서로 보듬고 위무하면서 진정성의 소통으로 현실적 곤궁을 감내하고 있지만, 시대사회적인 현실의 폭압적인 상황은 그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못하고 배경으로만 머물고 있다.

     이 작품은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의「야끼니꾸 드래곤」에서 많은 극적 상황과 형식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것을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들의 창작인 것으로 포장하고 있는 점은 대학극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좋지 못한 선례로 남을 수 있어 아쉽다. 그러나 연기의 전체적 앙상블과 역할 인물에 대한 해석과 소화, 그리고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여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연기의 섬세함과 에너지는 높이 살만하다.

     계명대학교 연극예술과의「과학하는 마음-평화로운 원숭이」(히라타 오리자 작, 김상헌 연출, 가마골소극장, 2014. 8. 5〜6)는 작가의 이른바 ‘조용한 연극’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일상적인 풍경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듯이 묘사하는 극사실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연극적인 힘 대신 일상적 풍경을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연극의 본질일까 하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극사실주의에 가깝게 섬세하지만 그들의 극적 행위가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원작의 내용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비워진 서사의 의미를 관객들이 전달받지 못해 소통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사실적인 무대미술과 오브제의 배치, 그리고 배우들의 구조적인 동선은 섬세하고 자연스럽다. 이 작품은 주제의 의미 전달이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아 관객들이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흠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의「오구」(이윤택 작, 전치언 연출, 가마골소극장, 2014. 8. 9〜10)는 대학극으로서는 소화하기 벅찬 소재를 역할인물들의 절묘한 연기 앙상블과 한국적 가무악의 신명으로 잘 풀어낸 수작이다. 정교하고 단아한 무대장치와 기능적이고 순발력 있는 무대 전환도 아주 돋보였다. 그러나 대학극만이 가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조하지 못한 것은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대와 객석의 정서적 유대감  

     2014년 제14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공연 레퍼토리의 예술적 완성도와 운영 방식의 우수성은 차치하고라도 무대와 객석의 정서적 유대감에 있어서는 단연 으뜸이었다. 연극의 특성 중 ‘귀환효과’(feed back)라는 것이 있다. 무대 위에서의 공연의 질은 관극 태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즉, 좋은 관객이 좋은 연극을 만들고 나쁜 관객이 나쁜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다. 관객의 관극 태도 여하에 따라서 무대 위의 공연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밀양연극촌은 실내 극장이 세 군데, 야외극장이 두 군데 있다. 그 중 ‘숲의 극장’은 객석은 지붕으로 가려져 있지만 무대는 허공으로 뚫려 있고, 1천 석 규모의 ‘성벽극장’은 객석과 무대 모두 노천 형태로 뚫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천 시에는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번 축제 기간 중 성벽극장에서 공연된 극단 목화의「템페스트」와 연희단거리패의「아리랑」, 그리고 숲의 극장에서 공연된 우리극연구소의「물고기의 귀향」과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늙은 소년들의 왕국」공연은 무대와 관객의 정서적 일치감을 보여준 좋은 선례를 남겼다.

     폭우가 쏟아져 공연이 불가능했지만 무대 위의 배우들은 비를 맞고서라도 공연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문제는 관객이었다. 그러나 관객 역시 쏟아지는 비를 감수하고서라도 공연을 끝까지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한 사람의 동요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공연은 자정을 넘기면서 계속되었다. 초청공연을 무사하게 치룬 극단들은 모두 입을 모아 관객의 우수한 관극 태도를 칭찬했다.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무대와 객석의 진정한 정서적 유대감만 형성된다면 공연이 가능하다는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이 현실로 입증된 셈이었다.

     2014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연극의 요소 중에서 관객이 정말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확증해 주었다. 관객들은 무대 위의 극적 상상력이 빚어내는 판타지를 통해 마음속의 시름이나 현실의 고통과 불안을 치유했으며, 무대 위의 배우들은 관객들의 진정성을 통해 앞으로의 연극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설정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연극을 통한 소통과 치유가 이루어진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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